게임과 신체, <Manuel Samuel> 리뷰

 

<Manual Samuel>

개발: Perfectly Paranormal, 출시일자: 2016년 10월

 

누구든 게임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면, 장시간 게임 플레이 후에 몰려오는 피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게임이든 한 번 잡기 시작하면 놓아버리기 쉽지 않고, 특히나 시드 마이어의 <문명> 같은 이른바 ‘막장 제조 게임’을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정형외과나 안과로의 방문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다. 물론 다른 이유로라도 컴퓨터를 장시간 사용한다면 비슷한 결과를 초래하겠지만, 게임 플레이 후의 피로가 더욱 극심한 이유는 게임이 가져다주는 몰입감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몸 상태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 속 내용에 푹 빠져있다 보면 내가 눈을 잘 깜빡이지 않는다던지, 목을 앞으로 빼고 있다든지 하는 사소한 내 몸의 상태 같은 건 금방 잊어먹고 만다. 오히려 내 체력보다는 내 캐릭터의 HP가 내려가는 상황이 더 걱정인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손을 바삐 움직여 내 캐릭터의 신체를 얼마나 잘 보존할 것인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흔히 말하는 ‘컨트롤’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야기할 게임은 뭔가 조금 다르다. <Manuel Samuel>은 2016년 10월 15일 스팀에서 발매된 신작 인디게임이다. 게임 자체는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그래픽으로 구성된 일종의 인터렉티브 서사 장르에 속하며, 게임의 전개 자체는 딱히 특색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게임의 내용과 단단하게 결부해있는 게임의 플레이 방식은 꽤나 독특하며 플레이어들에게 자신과 신체 그리고 캐릭터, 즉 게임 속의 대리적 신체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제시한다.

 

게임의 서사는 나레이터가 이야기해주는 새뮤얼의 어느 하루로 시작한다. 새뮤얼은 젊고 부유하고 건강한, 그러나 제 손으로는 어떤 일이든 직접 해본 적 없는 부유한 집안에서 곱게만 자란 이른바 ‘금수저’다. 이런 샘의 인생이 게임 초장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약속장소인 카페에서 샘은 여자 친구에게서 그의 무능함을 빌미로 이별통보를 받는다. 그는 여느 때처럼 그에게 주어진 부로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었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떠나고, 그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 건널목을 급히 건너다 결국 트럭에 치여 숨을 거두고 만다. 방탕한 그의 영혼이 도착한 곳은 지옥이다. 저승에서 마주한 스웩 넘치는 저승사자는 샘의 영혼을 탐내며 그에게 거절할 수 없는 거래를 제안한다. 거래를 수락해 이승으로 돌아온 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말그대로 ‘제 몸 하나 가눌 수 없는’ 통제 불능의 육체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눈을 깜빡이고, 한 발짝 한 발짝 떼는 것, 심지어는 척추를 곧추 세우고 서있는 그 모든 간단한 삶의 동작마저도 모두 의지와 노력이 들어가야만 한다. 이 때문에 게임 내내 플레이어는 샘 신체의 대리자가 되어 그의 몸의 구석구석 움직임을 일일이 ‘수동적으로(manually)’ 조절해주어야만 한다.

<Manuel Samuel>의 플레이적 측면, 바꿔 말해 쉬이 무너져버리고 마는 캐릭터를 가까스로 부여잡아야하는 이런 플레이는 지난 2,3년간 해외와 국내 게임 유튜버들이 앞 다퉈 영상의 소재로 삼기도 했던 이른바 래그돌(Ragdoll) 게임류의 그것과 유사해 보인다. 본래 래그돌이란 게임 내 캐릭터들이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는 과정에서 케릭터 모델이 뼈가 없는 ’헝겊인형(Ragdoll)‘처럼 무너져 내려 이에 따라 글리치적 상황이 연출되는 버그를 주로 일컫는 말이었다. 이러한 버그는 종종 우스운 상황을 연출하며 게임 커뮤니티 내에서 일종의 장난으로 승화되기도 하였는데, 래그돌류 게임이란 이러한 버그와 버그적 플레이의 유희를 적극적으로 본게임 시스템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게임들을 지칭한다. 래그돌 게임은 플레이어의 조작에 잘 따라주지 않는 캐릭터, 혹은 마리오네트처럼 캐릭터의 팔다리를 직접 조종해서 가까스로 결승선으로 끌고 가는 단순한 플래쉬 기반의 게임들(CLOP, Ragdoll Olympic)으로 부터 시작해, RPG 형식을 빌려 플레이어 캐릭터와 NPC 캐릭터들의 래그돌적 상호작용을 통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고 즐길 수 있는 오픈월드 형태의 게임들(Goat Simulator 등)으로 진화해왔다. 래그돌류 게임의 대표작인 <Octo Dad>만 보더라도 <Manuel Samuel>과의 많은 유사점이 발견된다. 인간과 결혼한 문어가 가장이자 아버지로서 고군분투한다는 다소 황당한 서사를 나레이터의 발화에 따라 일방향적으로 따라간다는 점, 인간들 사이에서 그 신분이 노출되지 않게끔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문어의 팔다리를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해야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Octo Dad>나 다른 래그돌 류 게임의 플레이는 어느 정도 그 조작에 익숙해지고 나면 캐릭터의 몸을 움직이는 것은 다른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아진다. 단지 때때로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게임 속 상황이 웃음을 자아낸다는 점 빼고는 말이다. 이에 비해 <Manual Samuel>의 조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짜증 그 자체다. 앞서 이야기한 게임의 몰입감 자체를 방해할 정도다. 잠시라도 나레이터의 설명에 정신을 빼앗기기라도 하면 숨을 쉬지 못한 샘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버린다. 혹은 눈을 깜빡이지 않아 시야가 뿌옇게 변해 게임의 화면이 보이지 않기도 하고 금세 샘의 몸이 고꾸라져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플레이 자체는 레그돌 게임의 컨트롤 방식의 단순한 심화버전으로 보이는 듯 하지만, 근본적으로 수동적인 새뮤얼을 부어잡고 있는 것은 레그돌 게임 속의 우스꽝스럽고 유쾌한 상황을 연출하지 못한다. <Manual Samuel> 의 플레이어는 샘의 신체적 행위에 해당하는 여러 키에 지속적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Manual Samuel>의 이토록 ‘짜증나는’ 플레이는 단순한 재미의 영역을 넘어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근사하고 화려한 게임 속 움직임들의 이면 내에 생략되어 있던 신체의 영역과 캐릭터로 매개되는 게이머 신체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게임에서 게이머의 신체는 기껏해야 입력장치를 두드리는 손가락으로 축소된다. 이 손가락의 운동조차도 게임 속에서 그에 상응하는 표상-이미지의 움직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아무리 손을 화려하게 놀려도 게임 속 무언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신체의 움직임이다. 혹은 캐릭터의 수행 동작이 세밀화/고도화 될수록, 그 행위에 몰입하기 위해서 게이머의 신체는 작아지거나 간소화되어야한다(그렇지 않으면 ‘컨트롤’이 불편하다거나 게임에 도저히 몰입이 되지 않는다는 불평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새뮤얼은 우리가 키보드의 한 키를 지속적으로 누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글자 그대로 ‘살아 있을 수’ 있다. 보통 게임에서 적 캐릭터와 마주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축소된 입력에 불과했던 게이머의 손가락 하나하나가 이제 그야말로 캐릭터의 존망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샘의 몸 상태에 신경을 쓰다보면, 그전까진 인지하지도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신체에서 그저 ‘자동적’으로 수행되던 불수의운동들이 샘의 ‘수동적’ 신체를 매개로 하나하나 우리 앞에 도드라지게 된다. 실제로 샘의 ‘척추를 곧추 세우기’ 버튼을 누르며 자신의 허리를, ‘눈 깜빡이기’ 동작에 자신의 눈꺼풀을, ‘숨 들이쉬고 내쉬기’ 행동에 자신의 숨쉬기를 인식하지 않게 될 플레이어는 없을 것이다. 마치 ‘평소에 혀가 어떻게 있지?’ 라는 질문 끝에 입속 가득 들어찬 혀가 인식되기 시작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것은 그간 근사하고 화려한 캐릭터들과 HP나 MP 정도로 단순화되었던 아바타의 신체성 뿐만 아니라, 가상의 신체로 이양되었던 우리 자신의 신체성 모두를 부각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곽노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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