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고나면 뭐해?

“Catch’em All!”, but then…?

한국에 뒤늦은 <포켓몬 고(Pokemon Go> 열풍이 불어닥친 것은 올해 초 무렵. 이미 전세계적으로 단물이 다 빠져버린 것 들어 와봤자 흥행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코웃음을 치는 이들도 있었다. 그도 그럴게 이미 속초 태초마을에서의 소동도 이미 오래 지난 일이 되어 가고 있었고, 한국 내 지도 반출 문제로 한국에서의 실현화가 늦어지거나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관심도는 확실히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 본인도 마찬가지였는데, 뭐 이제 하도 미디어에서 많이 다뤄서 이미 해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조소와 같은 반응들을 역으로 비웃기라도 하듯, 출시 첫 주 누적 사용자는 700만을 넘었다. 앱 자체는 구글 플레이와 앱스토어에서 매출 2위를 거두기도 했다. 주변에서의 실질적 반응들도 만만치 않았다. 포켓몬 고가 출시된 지 며칠 만에 지인들의 단톡방은 모조리 누가 얼마나 희귀한 포켓몬을 잡았는 지와 같은 자랑이나, 어디에 가면 어떤 포켓몬을 잡을 수 있다더라 하는 식의 공략을 공유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SNS도 이런 내용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주말이 되면 카페를 전전하는 것 외에 하릴없던 친구들은 공원에서 포켓몬을 하자며 나를 불러내기도 했다. 정말 극성적인 플레이어였던 지인은 피카츄를 잡겠다며 평소엔 찾지도 않던 보라매공원까지 걸어 찾아가거나 하는 등 열성을 불태우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초기의 미지근한 반응들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열기는 대단했다. 필자도 집에 들어가는 길을 일부러 빙 돌아 포켓 스탑이 있는 길을 택하기도 했고, 걷는 기회만 생기면 포켓몬 고를 주머니 속에 켜두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열기는 무섭게 끓어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무섭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본인의 기억으로는 출시 2-3개월만이었다. 대부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걸 아직도 해? 라던가 이제 손을 떼고 싶다는 반응이 되돌아왔다. 어째서 포켓몬 고는 이토록 금방 플레이어들의 흥미에서 멀어졌을까? 아니 애초에 어떻게 그토록 사람들을 사로잡았을까? 그 사로잡았던 매력의 요소가 어느 순간 날아 가버리기라도 한 것인가? 한국인들의 냄비 근성이라든가, 이미 세계적으로 인기가 줄어든 추세였으니까 하는 식의 단순한 해석으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본인의 경험과 주변의 반응을 통해, 그리고 여기에서 포켓몬 고와 이의 원천적 콘텐츠인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과 원본 게임의 관계를 되짚어 봄으로써 최근 포켓몬 고를 둘러싼 일련의 열정과 냉정의 이유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1 포켓몬 고는 왜 그토록 인기를 끌었는가?

 

포켓몬 고 인기의 급 하락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선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왜 이토록 인기를 끌었는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매체나 아티클에서 언급된 것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또한 그것들이 실제로 포켓몬 고만을 유별나게 재밌게 하는 요소인지도 되돌아봐야 한다.

1) 위치기반/증강현실 : 포켓몬 고의 혁신적이고 향상된 기술적 요소로 언제나 언급되었던 것들이다. 핸드폰의 위치 추적 활동을 이용하여 플레이어가 실제로 있는 공간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것은 확실한 포켓몬 고의 재미 요소로 작용했다. 자신이 무심코 지나치던 지형지물이 게임 요소에 반영된다는 점, 플레이어 스스로가 현실 속에서 직접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게임의 주된 플레이 및 작동 방식인 점 등, 포켓몬고의 위치기반 기술은 물리적이고 신체적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AR 기술 역시 유사하게 작동했는데 내가 실제로 보고 있는 사물, 인물들 사이로 가상의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은 포켓몬 고의 큰 흥미요소로 작용했다.

2) 단순한 플레이 : 포켓몬고가 좀 더 넓은 연령층, 그리고 게임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이들까지 ‘플레이어’로 만들 수 있었던 이유로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다. “Catch’em All”로 요약되는 포켓몬 고의 주요 플레이는 보물찾기나 땅따먹기처럼 이해될 수 있는 포켓몬 발견과 아이템 수집 그리고 간단한 수행(공을 던지는 동작)을 통한 포켓몬의 획득 두 가지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어떤 플레이어든 게임에 쉽게 접근하고 빠르게 플레이 방식을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다.

3) 수집과 정복 요소 : 포켓몬 고 플레이의 원동력이자 최종적 목표라고 할 수 있는 두 가지. 모든 포켓몬을 모으는 것과 한 지역의 체육관을 점령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도감을 하나씩 채워나가는 것은 소유한다는 수집욕을 충족시켜주며,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관계있는 지역, 살고 있거나 자주 가는 곳을 자신의 이름으로 점유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으로 작동하였음.

 

이상이 포켓몬 고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전세계에서 인기를 끌었던 원동력으로 평가받는 주요 요소들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요소가 정말 ‘포켓몬 고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 원동력이었는 지는 조금 생각해봐야할 필요가 있다. 사실 위의 세 가지 요소를 충족하는 게임들이 그 이전에도 이미 있어왔기 때문이다. 실험적 게임이긴 하지만 2004년 실행된 <팩맨하탄(Pac-manhattan)>의 경우 80년대 비디오게임 <팩맨>을 GPS 등의 위치기반 기술을 이용하여 현실 속에서 구현하기도 하였으며 <시티태그(Cititag)> 역시 GPS와 와이파이 기술을 장착한 PDA을 사용하여 고전적인 ‘술래잡기’를 멀티 플레이어 게임 형식으로 선보인 바 있다. 마냥 새로운 것처럼 보였던 포켓몬 고의 위치기반-증강현실 기술과 단순하고 직관적인 플레이를 결합한 게임의 시도들이 이미 있어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포켓몬 고를 개발한 나이언틱 역시 포켓몬 고와 유사한 거의 위치기반-증강현실 게임을 2014년 출시한 적 있다. <Ingress>는 포켓몬고와 동일하게 플레이어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특정 지역의 특정 랜드마크들에 직접 방문하여 그곳을 점령하는 방식의 플레이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게임이었다. 점령지들을 많이 정복하고 점수들을 ‘수집’함에 따라 플레이어와 그 소속팀이 승리를 거두는 식으로 포켓몬 고의 플레이와 골자는 거의 유사한 게임이었던 것이다. 전자의 두 게임은 실험적인 시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Ingress>나 유사한 게임들은 대부분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한 채 잊혀졌다.

위의 게임들이 성공하지 못한 데에는 이 ‘신기한’ 플레이에 관심을 갖게 할 만한 불씨가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포켓몬 고가 위와 같은 게임들과 똑같은 요소를 가지고 있음에도 유달리 인기를 끌 수 있었다는 것은 바로 똑같은 <포켓몬스터>라는 이름을 게임, 애니메이션 등등의 시리즈가 구축해왔던 거대한 세계관과 서사에 배경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켓몬스터라는 이름이 가장 처음 등장한 것은 닌텐도 게임보이의 한 게임에서였지만 닌텐도가 이 게임의 배경설정과 서사, 캐릭터등이 다양한 미디어를 종횡하는 다중 미디어 마케팅을 펼침으로써 전세계적인 인지도와 인기를 끌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인기의 주역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바로 포켓몬스터의 애니메이션 시리즈였다. 이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은 1997년 일본에서 첫 방영을 시작했으며, 이른바 ‘포켓몬쇼크’(포켓몬스터를 보던 아이들이 특정 에피소드를 보고 일종의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킴) 사건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매스컴에 보도되며 파급력을 얻었고 귀여운 캐릭터나 뚜렷한 스토리 구조가 인정받으며 급속도로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포켓몬쇼크’는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지 않던 한국에까지 알려지며 이미 포켓몬스터라는 이름을 퍼뜨렸으며, 이 유명세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1999년도 SBS에서 독점 계약을 통해 방영하면서 이는 2002년 까지 같은 내용으로 방송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대부분이 포켓몬스터 ‘오리지널’로 알고 있는 <포켓몬스터 무인> 시리즈였다. 포켓몬스터 게임 시리즈가 닌텐도 게임보이의 보급과 함께 소비되었지만 대중적으로 한국 내에서 포켓몬스터를 접할 수 있었던 매체는 TV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이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포켓몬은 애니메이션이 방송되었던 시기에 유년시절을 보내고있 던 이들에게 일종의 지배적인 문화 컨텐츠였다. 이들은 이 ‘포켓몬 문화’를 단순히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놀이거리(게임, 딱지, 수집용 카드, 인형…)나 식품(‘포켓몬 빵’)등 다양한 영역에서 접하고 소비했던 것이다. 덕분에 당시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세대에게도 포켓몬이란 단어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고 그들에게 ‘요상한 노란 쥐새끼가 나오는 만화’ 정도로 인지되었을 지라도 어느 정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던 대상이었다.

다시 포켓몬 고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포켓몬 고 열풍 무렵 게임의 주요 사용자층은 10대와 20대 (각각 35%, 31%)였다. 이들은 다름 아니라 1999년도와 2002년도 무렵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의 나이였으며 주로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을 직접적으로 소비한 세대였다. 따라서 포켓몬 고에 대한 이상할 정도로 높은 관심은 이 세대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지배했던 서사에 대한 향수 혹은 재소비로 접근했기 때문이며 이는 현재 보편적으로 보급된 게임 매체와 게임 문화와 융합되어 더 폭발적인 화력을 갖게 된 것이다.

필자는 지인들에게 “왜 포켓몬 고를 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통해 포켓몬 고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위와 같은 연유에서였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들은 필자의 질문에 주로 어릴 적 보았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을 ’직접 수집할 수 있어서 였다‘고 답함으로써 필자의 주장을 반증하였다. 즉 친숙한 스토리에 먼저 끌리고 그 스토리 속 캐릭터를 내가 사는 이곳에서 체험(증강현실)할 수 있다는 체험성, 현장성 덕분에 더 게임에 열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포켓몬 고는 포켓몬스터라는 거대한 서사를 다시 ’현실적‘으로 소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토록 인기를 끌었다고 보는 편이 맞지 않을까 하는 말이다.

 

  1. 포켓몬 고는 왜 그토록 빨리 식었는가?

 

그렇다면 이들은 ‘모든 포켓몬을 잡아서 포켓몬 마스터가 되자!’ 라는 어릴 적의 야심찬 꿈을 왜 그토록 빨리 놓아버렸는가? 이번에는 지인들의 대답들로부터 시작해보자.

 

필자의 동년배 친구이자 이른바 ‘속초 유학파’로 다른 이들보다 앞서 포켓몬고를 플레이했던 L 씨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게임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별로 잡고 싶은 포켓몬들이 남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자신이 알던 포켓몬보다) 모르던 애들이 더 많이 튀어나와서’라고 덧붙이기도 하였다. 또한 필자의 주변에서 가장 열성적인 플레이어였던 H씨(그는 포켓몬을 잡기 위해 자신의 생활권이 아닌 경기도까지 왕래하기도 하였고 서울의 전지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의 증언에 의하면 ‘같은 패턴의 (플레이가) 반복’되어서 ‘지루해졌다’는 이유가 컸고 또 많이 잡고 나자 ‘더 이상 (많은 포켓몬을) 잡을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필자도도 그렇고 대부분의 지인들이 포켓몬 고를 그만둔 시기를 되짚어보면 포켓몬 고의 2월 17일 업데이트 이후, 2월말에서 3월 초 무렵으로 기억한다. 해당 업데이트의 내역은 이른바 ‘2세대 포켓몬’, 성도지방의 포켓몬이 등장하고 이를 잡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문제는 해당 포켓몬들이 포켓몬스터 게임 시리즈를 한 사람들이라면 익숙하지만, 포켓몬 고의 다수 플레이어를 차지하고 있었던 이들, 어린시절에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으로 통칭되던 무인 시리즈를 접하고 자란 이들에게는 딱히 익숙하지 않은 서사 요소였다. 따라서 L씨의 말처럼 포켓몬스터에 직접적으로 접근하게 되었던 ‘그 옛날의 그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잡아야할 포켓몬들이 많아졌고 이에 따라 더 많은 플레이 요소가 추가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플레이어들이 그 많은 플레이 요소들을 경험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은 단순히 더 많은 소위 ‘노가다’성 플레이로만 인식되었던 것이다.

H씨의 증언을 떠올려보자면 포켓몬 고의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적인 측면 역시 게임을 금방 그만두게 만들만한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앞서 언급된 포켓몬 고의 매력들이 오히려 포켓몬 고를 지루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되었던 것이다. 가장 첫 번째 장점으로 꼽히는 ‘단순한 플레이’가 바로 그것이다. 어느 정도 포켓몬들의 수집을 진행한 플레이어들에게 더 이상 게임을 진행해야하는 강력한 동기가 없었던 것이다. 포켓볼을 날리는 동작과 이에 따라 (확률적으로 혹은 플레이어나 갖고 있는 아이템의 레벨에 따라) 도출되는 수집 혹은 포켓몬의 도망이라는 결과가 매번 동일하게 반복된다. 이런 단순한 플레이는 게임에 처음 접근할 때에는 매력 요소로 작용할지 몰라도 이내 질려버리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체육관 점령이라는 대전 요소도 있었지만 이는 일반적인 PVP와는 다르게 해당 위치를 선점령한 플레이어의 ‘기록’과 싸우는 것이었기에 긴장감이 떨어졌다. 또한 대전의 결과도 플레이 자체에 달려있다기보다는 캐릭터들의 CP 값 차이, 즉 플레이어가 얼만큼 많은 포켓몬을 수집했고 그중에 운이 좋게도 수치가 높은 포켓몬이 얻어 걸려 그것을 얼마나 ‘노가다’를 통해 육성시켰느냐에 달려있었던 것이다. 이 육성 또한 단순한 수집 외에는 방법이 없어서 먼저 시작한 이들(이른바 속초 유학파들)이나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수집에 열광한 플레이어, 혹은 운 좋게 포켓스탑이 많은 소위 ‘포세권’ 근처에 거주하는 이들이 아니고서는 체육관 점령의 문턱은 너무나도 높았다.

장점으로 꼽히던 위치기반이나 증강현실 기술 역시 나름의 문제가 있었다. 대부분 포켓몬 고를 플레이 했던 지인들의 말을 들어봐도 AR 기능을 키고 플레이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플레이 초반에는 눈앞에 포켓몬이 떠다니는 것 같은 신기함에 즐거워 하지만, 실질적으로 플레이자체와 단단히 결부되지 않은 증강현실 방식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이 굳이 AR 기능을 유지해야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실제로 플레이해보면 알겠지만 AR 기능을 켰을 때 포켓몬을 잡기가 더 어려우며, 공공장소에서 플레이시 AR 기능을 사용하면 핸드폰을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타인들의 시선 때문에라도 이를 끄는 경우가 생기고 말았던 것이다. 만약 AR 기능이 게임의 배경 스토리나 플레이적 요소와 더 밀접하게 연관이 있었다면(예를 들면 땅 포켓몬인 디그다를 잡기 위해서는 바닥을 뒤져야 한다든지, 비행 포켓몬은 항상 하늘에서만 등장한다든지 하는 식의) 의미가 있었겠지만. 위치기반 시스템엔 GPS 기술의 한계 때문에 오점이 많았으며(건물 안에만 들어가도 위치가 잘 잡히지 않는다던가), 레벨업이나 일정한 수집 요소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걸어서 이동’해야 하는 것이 나중에는 게임 플레이를 지루하거나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른바 GPS 조작이라는 치트키 혹은 꼼수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며, 어느 치트키가 그렇듯 이는 게임의 재미를 급감시키게 했다.

 

이러한 포켓몬 고의 주요 플레이 요소가 처음에는 장점으로 기능하다가 빠른 시간 내에 단순히 귀찮거나 지루한 것으로 바뀐 데에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다시 지인들의 증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앞서 말했듯 더 이상 잡을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해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처음으로 포켓몬을 ‘잡고 싶다’ 혹은 ‘잡아야겠다’라고 생각한 이유를 재언급하자면, ‘내가 알던 이야기’의 ‘요소’들을 체험하고 싶어서였다. 포켓몬 고의 원류 급이 되는 포켓몬스터 게임 시리즈들(주로 게임보이로 플레이되었던 레드-블루-그린 등등의)은 RPG 장르의 게임이었으며 게임 플레이의 주된 요소는 대전이었지만, 게임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여느 RPG가 그렇듯 일련의 스토리를 게이머가 체험해나간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다시 애니메이션으로서 재매개되면서 이들은 서사와 이미지로 소비되었으며, 이 서사에서 뻗어나간 갈래들이 다시 게임으로 재매개되는 순환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포켓몬 게임 시리즈는 탄탄한 서사를 기반으로 포켓몬 고가 등장하기 전까지도 다양한 소비자 혹은 팬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게임 그 자체의 플레이는 아주 복잡한 것이 아닌 수집과 대전의 연속이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포켓몬 고의 서사적 요소는 이 게임이 근거하고 있는 원 서사의 배경 외에는 없으며, 게임 내부에서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진행 할수록 그 외의 어떠한 ‘이야기’도 풀어나가거나 들을 수 없다. 다시 하드플레이어였던 H씨의 이야기를 주목해보자. ‘더 이상 잡을 이유가 남지 않았다’, 즉 플레이어가 포켓몬 고의 코어 플레이를 더 이상 지속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이 게임은 유희적인 것으로써 ‘플레이’될 동력을 잃은 것이다. 보통의 게임에서 이 ‘이유’란 플레이 행위 외의 서사적 요소들을 일컫는다. 예를 들면 ‘젤다의 전설’에서 링크(플레이어)가 몬스터를 잡고 루피를 모으고 퍼즐을 푸는 반복적인 행위를 지속하는 것은 ‘개넌’이라는 정체모를 악당(악당의 모습은 게임오버 화면에서 모호한 실루엣으로 등장하며 플레이어의 궁금증을 심화시킨다) 확인하고 이를 무찌름으로써 ‘젤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서다. 게임의 이유나 목적은 서사가 그 절반 정도를 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포켓몬 고에서는 내가 이 포켓몬들을 수집하거나 혹은 지역을 점령하고 나서 어떠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지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포켓몬을 수집할 때마다 포켓몬에 대해 얽혀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거나, 다음에는 어떠한 포켓몬을 잡아야할 어떠한 이유나 목적이 설정되었다면 어땠을까? 즉 포켓몬 게임을 진행하는 이유가 네러티브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더라도 게임을 접하게 된 혹은 게임 플레이를 더 지속하게 하는 동기는 네러티브에서 기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말이다.

 

  1. 게임을 ‘게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포켓몬고의 흥망성쇠를 되돌이켜보며 필자는 또 다른 질문에 휩싸이게 되었다. 포켓몬고의 열기의 때 이른 급감이 서사 요소의 부재 때문이었다면, 게임이란 반드시 서사를 가져야만 ‘좋은 게임’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나아가 게임을 ‘게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게임들을 생각해보면 서사는 분명 ‘좋은 게임’의 충분조건이긴 하지만 필요조건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모순적이게도 필자는 본인을 모든 게임에 열광하게 했던 게임, 그리고 아직까지도 때때로 플레이하곤 하는, 게다가 거의 누구에게나 ‘고전’으로 인정받는 한 게임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그 게임의 이름은 다름 아닌 <DOOM> 시리즈다. <DOOM> 시리즈가 고전 게임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테지만 뭐니뭐니해도 FPS 게임이라면 가져야한다는 모든 요소(게임 내내 이어지는 빠른 속도감과 끊임없이 퍼즐을 풀듯 헤쳐 나가야하는 맵 구성, 총을 쏘고 괴물을 죽일 때의 타격감과 생동감 있는 소리, 직관적인 HUD 등등)를 갖춘 그야말로 FPS의 시초(물론 정말 ‘시초’는 아니지만) 격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DOOM>이 최초로 등장한 1993년에서 근 사반세기가 지난 2016년,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이자 명칭도 동일한 <DOOM 2016>까지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심지어 발매된 지 그토록 오래된(시리즈의 가장 대표 격으로 인정받는) <DOOM 2>의 경우, 일련의 하드코어 팬그룹(하드코어하다지만 실제로 팬의 숫자는 상당하다)에 의해 각종 모드로 탈바꿈하며 여전히 ‘줄기차게’ 플레이되고 있기도 하다.

헌데 문제는 이 게임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가 ‘서사’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DOOM>시리즈는 무식할 정도로 서사가 없어서 사랑받는다. 화성의 과학 기관에서 진행된 포털 실험이 잘못되면서 지옥의 괴물들이 소환되고, 이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은 한 해병이 괴물들을 무찌르고 상황을 원상복구하려 한다는 아주 간단한 배경설정과 게임의 챕터의 중간중간에 짤막하게 나오는 몇 문장이 게임 서사의 전부인 것이다. 심지어 이런 것을 죄다 모르더라도 이 게임의 플레이는 재밌기만 하다. 그 자체로 역동적이고 마치 스포츠를 하듯 끊임없이 움직이고 사고해야하기 때문에 서사는 끼어들 틈조차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 액션감에 서사까지 부여해 더 좋은 게임을 내놓으려는 욕심에 2004년 발매된 시리즈의 3번째 작품 <DOOM3>의 경우, 욱여넣은 서사성으로 인해 액션성까지 시원하게 말아먹으며 시리즈 최고의 실패작이 되어버렸다. <DOOM3>로 인해 바닥에 떨어졌던 시리즈의 명성은 10년 이후 <DOOM 2016>에서 다시 서사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플레이 자체를 부각시킴에 따라 비로소 복권되었다.

플레이 그 자체만으로 ‘게임다운’ 게임이 된 이 작품의 개발자는 심지어 이런 말까지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게임의 스토리는 포르노의 스토리와 같다. 있으면 좋겠지만, 중요하진 않다”. 플레이 자체만 재밌다면 게임의 서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사실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초기의 ‘고전 게임’들을 되돌이켜보면 스토리 자체는 별 거 없는 경우가 많다. <인베이더>도 우주에서 외계인이 쳐들어왔다!는 것 외에는 알 필요도 없고, <팩맨>도 이 동그라미 괴물이 왜 점들을 먹어야하는지 왜 유령이 그를 죽어라 쫓아다니는지 알 수도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재밌게 ‘플레이’되지 않았는가? 서사가 배제된 게임의 경우, 플레이어가 지루해하지 않고 그 게임을 오래 소비하도력 하려면 게임의 플레이 자체가 주는 흥미요소가 두드러지게 강해야한다. 슈팅장르 혹은 리듬게임이나 대전게임 등이 그런 대표적인 예가 될 지도 모른다.

결국 필자가 본문과 다른 모순적인 이야기로 끝을 맺으려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게임은 과연 무엇인가? 서사를 역동적으로 파악해나가는 놀이인가 혹은 그 자체로 유희적인 행위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놀이인가? 혹은 그 둘 다라면 게임 안에서 그것들 각각의 비중은 얼마나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다. 게임은 이제 단순한 ‘놀이’로 치부되거나 단적인 측면만으로 파악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된, 의문점을 던지고 분석할만한 가치가 있는 하나의 대상으로서 게임을 진지하게 바라보아야할 때가 온 것이다.

 

곽노원 (더플레이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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