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제 4회 플레이스테이션 Game on air의 발제글 입니다. 

<마비노기>라는 게임에 모닥불을 켜는 스킬이 있었다. 생활스킬 중 여행 카테고리에 속해 있는 정식명칭은 ‘캠프파이어’이다. 스킬을 시전하면 대략 5분간 모닥불을 피우며 그동안 회복속도가 증가하고 음식공유효과가 발생한다. 그다지 큰 임팩트가 없는 비전투 스킬이지만 게임 서비스 초창기에, 그리고 게임이 발표된지 햇수로 14년이 지난 지금도 ‘마비노기’ 하면 ‘어릴적 할머니가 들려주신 옛 전설’의 미디 음색과 함께 가장 먼저 가슴을 두근거리며 떠올릴 기억의 매개중추이자 핵심 주인공으로 남아있다. 게임 진행을 위한 큰 이득이 없음에도 필드에 모닥불이 켜지면 플레이어들이 하나 둘 모여 음악을 연주하고 키보드를 놀려 채팅을 했다. 그리고 그 사소한 행동은, 게임플레이만큼이나 재미있었다. 이 지점은 해당시기, 그리고 계속 이어질 게임의 커뮤니티성 증가의 목적과는 다소 상이한 풍경이었다.

게임이 발전하면서 게이머를 상대하는 대상이 프로그램이 조종하는 NPC에서 같은 게이머로 변화했고 솔로 플레이가 아니라 대전, 레이드와 같은 PVP, PVE 등의 협력 플레이가 주 콘텐츠로 떠오르면서 게임의 커뮤니티성은 점점 강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커뮤니티 부분은 그 무엇보다도 게임 그 자체를 위함이었다. 더욱 고급의 정보를 획득하고 혼자서 해낼 수 없는 더욱 어려운 난이도의 콘텐츠에 도전하여 더 나은 성능의, 더 희귀한 아이템의 획득이 목표였다. 결국 게임을 더 잘 하기 위한 목적에 귀결하는 것이었다.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전기리그 결승전, 광안리, 2004

한편, 게임이 네트워크와 합류하고 게임의 영향력이 증대하면서 주류매체였던 방송으로 게임이 진출했다.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는 이러한 게임의 풍경은 바로 ‘보는 게임’의 그것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티비에서, 그리고 컴퓨터 브라우저에서 온게임넷이라는 방송채널을 검색하여 고정하고, 프로 게이머들이 플레이하고 캐스터들이 해설하는 방송을 ‘시청’한다. 게임은 플레이한다는 행위와 더불어 ‘본다’라는 것을 추가했다. 물론 이러한 놀이에 대한 보는 풍경, 보는 문화는 꽤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둑이나 장기에는 늘 두는 사람의 어깨곁에, 등 뒤에 장면을 지켜보며 훈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락실에는 특출한 오락 고수들의 원코인 클리어를 지켜보며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이 있었으며 대전게임의 고수들에 이어 게임방의 스타크래프트와 다양한 네트워크 게임을 거쳐 방송에 이르른다. 그리고 전통적인 방송에 이어 새로운 형태의 방송 플랫폼이 등장했다. 스트리밍(streaming)이라고도 불리는 인터넷 방송이다.

이곳에서 게임은 실시간으로 플레이가 진행되며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에 대한 반응을 즉각적으로, 그리고 실시간으로 채팅을 통해 표출한다. 새로운 송출자이자 게임 플레이어인 BJ는 이를 시청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타임랙없이 즉각적으로 소위 리액션을 하고 플레이에 적용한다. 이에 역시 새로운 시청자이자 또한 BJ를 조종하려고 하는 플레이어들은 그에 대한 반응을 채팅창과 기부기능 등을 통해서 발출한다.  모든 일련의 액션과 리액션, 피드백들은 모두 콘텐츠로서 포섭되고 포괄되며 하나의 콘텐츠로서 남아 다시 재소비된다. 이러한 공동참여 공동진행의 플랫폼 속에서 게임은 이전 방식의 플레이와는 다른 맥락을 지니며 생산자와 소비자, 송출자와 수신자의 관계 역시 새로운 형태와 새로운 관계를 꾸리게 된다. 게임의 커뮤니티성은 스트리밍이라는 방송 네트워크 플랫폼을 만나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더 롱 다크(The Long Dark, Hinterland Studio, 2017) 는 1인칭 오픈월드 생존 게임으로, 주인공은 물품배달을 위해 캐나다 상공을 비행하던 중 갑작스런 동력상실로 인적이 없는 혹한의 자연 한 가운데 추락하는 것을 시작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대재앙이 닥친 상태이며 모든 문명은 정지되었고 그의 곁에는 누구도 없다. 주인공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외로움을 이겨내며 생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게임은 몰입감을 위해 최대한 현실을 반영하고 닮으려고 한다. 동시에 게임에 몰입을 위해 게임의 재미를 위한 특정요소를 제외한 대다수의 물리적, 생리적 절차와 반응을 추상화하고 생략한다. 이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가는 게임의 난이도를 정하는 것 그 이상이다.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그 균형을 맞추는가가 바로 플레이어의 플레이시간을 결정한다. 즉 ‘재미’를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인 것이다. 더 롱 다크는 이 균형지점을 극단적으로 비틀었다. 다양하고 자세한 파라미터는 현실성을 높이지만 이 게임을 그것을 넘어 게임이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관리요소를 세분화하고 게임 내 영향력을 극대화했다. 예를 들어 상태이상이나 예상불가능한 부상의 경우 발목삠, 손목삠, 저체온증, 식중독, 이질, 출혈, 감염, 화상, 기생충감염, 갈비뼈골절, 밀실공포증, 감전, 낙사, 타박상, 찰과상, 동상, 배고픔, 갈증 등 있을법하지만 설마 이것을 게임에서 볼 줄이야 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효과와 결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특정 이벤트가 발생한 직후에는 게임이 강제로 저장된다. 로그라이크 장르처럼, 게임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 – 되돌리기 – 가 봉인된다. 물리적인 현실을 어떻게든 닮으려하지만 동시에 실제 현실의 제약을 넘어선 체험을 원하고 해소할 수 있는 게임의 특성과는 다소 궤가 다르다. 아름다운 캐나다의 자연을 감상하다가 눈보라에 밀려 폐가에 들어가 휴식하지만 온도, 칼로리, 피로도, 갈증 등 신체이상에 영향을 끼칠 파라미터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잠자기조차 심각하게 숙고해야하는, 정말로 생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판단을 해야하는 생존 게임이다.

홍방장의 더롱다크 콘텐츠 메인이미지 중

BJ 홍방장은 트위치 플랫폼에서 게임 더 롱 다크의 게임모드 중 샌드박스를 플레이하고있다. 샌드박스모드는 게임 내 랜덤 지역에서 플레이를 시작하여 그냥, 살아남는 것이 목표인 방식이다. 특정한 목표나 목적 없이, 죽기 전까지 플레이하는 모드이다.  BJ는 스트리밍이라는 환경에 결합한 플레이를 통해 일반적인 게임 플레이와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 ’죽기전까지’ 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 콘텐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캐릭터의 생존이 아니다. 모드 내 가장 어려운 난이도인 ‘침입자’급에서 캐릭터의 생존은 플레이어의 능력을 넘어선 소위 ‘운빨’이다. 홍방장은 시시때때로 말도 안되는 상황에 맞닿뜨리며 본인의 노하우와 컨트롤 능력으로 그 위기를 넘을 때도 있지만 도저히 안되는 상황에서는 편하게 그 캐릭터를 포기한다. 최근 그의 캐릭터 이름은 ‘200호’에 가깝다. 그의 닉이 아니라 그동안 죽어간 캐릭터의 숫자이다.

게임방송에서 시청자들은 플레이어를 플레이한다. 게임 플레이 화면 한켠에 놓인 채팅창은 커뮤니티사이트의 자유게시판같기도, 라디오프로그램의 사연신청란같기도 하지만 이곳은 정적이고 정지된 리플리스트나 라디오BJ들이 하나 하나씩 읽으며 청취자들에게 전달하고 반응을 듣는 모습과 다르다. 정말 끊임없이 스크롤링되며 올라가는 텍스트의 향연이다. 그들은 조언을 하거나 BJ의 신경을 건드리고 채팅창의 분위기를 몰아가며 ‘BJ=게임플레이어’의 행동방향을 조종한다. 좀 더 주목받고 싶거나 더 큰 리액션을 얻고 싶은 사람은 그 흐름에 적절한 이미지나 동영상을 도네(영상기부) 방식으로 ‘투척’한다. 그들이 던진 적절한 타이밍, 적절한 의미의 자료는 게임 내 폭탄 아이템처럼 말그대로 채팅창과 BJ의 반응을 초토화시킨다. BJ는 일상적인 언어를 넘어선 리액션을 하고, 같이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채팅창을 말그대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 같은 반응어휘를 이용하여 채팅창을 말그대로 폭파시킨다. 이들은 게임스틱이나 마우스, 키보드 버튼을 누르며 직접적으로 대상의 움직임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다. 텍스트창과 영상기부와 같은 시스템을 이용해 말그대로 투척된 텍스트들은 게임 플레이와 그 방송 현장을 좌지우지한다.

홍방장의 방송 배경화면

이 게임의 궁극의 목표인 캐릭터의 생존과 생존시간은 홍방장과 홍팡이, 즉 홍방장의 방송을 시청하는 시청자를 연결하는 매개일 뿐이다. ‘더 롱 다크’라는 생존 게임이 가진 철저한 고독 속에서 고통받아야 할 여정은 왁자지껄 홍팡이들과 함께 한 수다셔틀이 되었다. BJ의 더 롱 다크 방송이라는 모닥불 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BJ가 스스로의 몸으로 연주하는 시시껄렁한 수다를 들으며 함께 대화를 진행한다. 맥락을 듬성듬성 뛰어넘는 두서없는 여러 잡담들은 다시 게임 자체에 대한 이야기와 진행으로 묶인다. 어쨌거나 게임 플레이는 계속된다. BJ가 조종하는 캐릭터는 난관을 극복하거나 때론 좌절하며 생존을 계속하고 게임 플레이를 위한 유용한 정보는 담론으로 남아 어쨌거나 지식으로서 계승되고 도움을 준다. 그 와중에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각종 신변잡기와 일상 잡담은 예측키 어려운 엉뚱한 방향으로 뛰어다니며 참신하고 병신같거나 그러면서 ‘신박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생산한다. 게임플레이를 위해 커져가던 네트워크성은 또 다른 특성,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모습을 담게 되었다.

사람들은 게임을 통해 특별하고 자극적인 경험을 찾지만 동시에 그 곳에서 일상을 찾고 있다. 그들은 뭔가 특별하고 대단한 것을 찾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채우지 못한, 일상이기를 바라는 일상의 조각들. 방송 플랫폼은 네트워크와 게임이 만나 또 다른 풍경을 만들었다. BJ는 게임을 통해 ‘당신의 수면제이자 심야 라디오’가 되며, 시청자들은 모닥불을 지피고 그 안에서 투닥투닥 잡담을 나누며 잠으로 다가간다. 채팅창 텍스트의 스크롤과 이에 반응하는 BJ의 목소리는 시시덕거리며 위안을 얻는, 그리고 실제의 현실에서 받은 고독과 분노, 짜증과 내일의 불안을 잠시 밀어내고 잠으로 인도하는 모닥불 옆의 류트소리이다.

마비노기 모바일 (넥슨, 2018 출시예정) 티저 무비

허대찬 (더플레이 선임연구원)

카테고리: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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