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특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단어 하나는 아무래도 ‘몰입’일 것이다. 물론 우리는 전통적인 소설로부터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몰입을 한다. 이들은 눈을 뗄 수 없게 전개되는 이야기나 매력넘치는 주연과 조연 등 우리를 집중케 하는 요소들의 결합을 통해 우리를 매혹해 왔다. 게임은 이들 매체와는 차별화된 몰입의 모습과 그 가능성을 보여왔다. 게임이라는 매체 안에서, 키보드와 마우스, 게임패드를 통해서 내 판단으로 움직이고, 내 조작에 따라 움직이는 캐릭터는 내 신체의 확장이다. 또한 울티마에서 처음 사용된 아바타(avartar)라는 단어에서 드러나듯 게임속 주인공은 플레이어인 내 자신이 투영된 화신이자 분신이다. 단지 눈으로 따라가며 머릿속에서 투영, 상상, 해석, 재구성되는 다른 매체와 달리 게임은 우리들의 신체의 물리적 행위를 통해 매체와 겹쳐질 수 있다. 

이렇듯 오늘날의 게임은 게임을 하는 사람, 즉 플레이어의 ‘몰입’을 목표로 한다. 얼마나 플레이어가 게임속 주인공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게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흥행이 갈린다. 즉 몰입도가 높은 게임은 성공한 게임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가 더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 2013)이고, 그 게임의 트레일러인 위의 영상이다. 게임을 하기 전에 영상을 보았다면 게임하는 사람이 점차 게임의 주인공 조엘로 변화하는 모습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겠지만 충격적인 라스트 오브 어스의 프롤로그를 체험한 다음에 본 이 트레일러는 ‘즐겁다, 슬프다’ 이상의 묵직함으로 다가온다.

게임은 위에서 언급했듯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의 신체적 행위를 통해 게임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기에 다른 매체보다 몰입도가 더 높다. 그리고 그 몰입을 더하기 위한 요소중 중요한 것은 그래픽과 스토리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자본의 투입 정도에 따라 그 퀄리티가 달라진다. 얼마나 많은 사람과 시간과 기기를 투입하는가에 따라서 격차는 벌어진다. 당연한 사실이다. 투입한 사람과 시간에 따라 게임 내 세계와 오브젝트의 규모와 섬세함이 달라질 것이고 참여한 작가의 숫자에 따라 역시 등장인물과 이야기에 대한 당위성과 세부적인 인과, 복선의 양과 질이 달라질 테니까. 다만 대자본이 투입되는만큼 그정도의 흥행을 기대해야하기에 어느정도의 성공 공식을 따라야 하고 그렇기에 반복적 틀이 생긴다.

개인 또는 소규모 집단이 소자본을 가지고 개발하는 인디게임(Independent Game)은 메이져 게임을 비교항으로 삼고 다른 가치, 즉 색다른 시선이나 스토리, 그리고 사실같고 화려한 그래픽이 아닌 독특한 그래픽을 목표로 잡고 게임을 개발한다. 메이져 게임과 인디게임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플레이어들의 지각과 감정을 건드린다.

음. 위 이미지가 게임의 그래픽이 맞다. 인디게임 언더테일(undertail)의 플레이 화면이다. 특별히 제작한 시네마틱 영상이 아니라 인게임 영상이 이미 수년 전 풀 3D 그래픽 영화의 그래픽을 넘어선 것이 요즈음의 게임이다. 사람들이 바로 체감하며 그 질이 바로 구매력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그래픽이기에 그래픽 카드의 성능과 그를 이용한 그래픽의 퀄리티는 말그대로 수직상승해왔다. 도트 그래픽 자체를 스타일과 컨셉으로 잡거나, 또는 그래픽 외의 다른 부분에 집중했거나. 언더테일은 명명백백히 후자에 그 무게가, 전부 실려 있다.

게임의 진행방식 자체는 평범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일본식 RPG처럼 2D 세계인 필드를 탐험하며 랜덤하게 만나는 몬스터를 상대하며 돌아다니며 등장인물들을 만나고 사건을 만나며 제시되는 단서를 따라 스토리를 진행한다. 전투는 ‘도돈파치’나 ‘동방프로젝트’ 시리즈로 유명한 탄막슈팅게임의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이 게임의 독특한 지점은 전투가 선택이라는 점이다. 거의 대부분 필드에서 몬스터를 마주했을 때 전투를 통해 몬스터를 죽일 수도, 또는 보내주거나 도망칠 수 있다. 그리고 이 선택이 바로 엔딩을 극단적으로 가르는 지점이다. 게임에서 만나는 몬스터들과의 플레이어와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 모조리 죽일 수도 있고 대화나 다른 여러 행동을 통해 살릴 수 있다. 물론 주인공은 그들과 마주쳐 공격을 받기에, 그리고 살리는것보다 죽이는 것이 진행에 더 수월하기에 죽이는 방향으로 플레이하는것에 무게가 더 실릴 수 있다. 반면, 우리가 익히 알고있듯 인간이 착하고 몬스터가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순진하고 귀여운 게임 속 몬스터들이기에 어느정도 수고를 들이더라도 죽이지 않고 진행하는 것에 무게를 더 실을 수도 있다. 제작자 토비 폭스(Toby Fox)는 게임을 진행하는 가운데 플레이어의 선택에 대한 균형을 다른 지점들을 이용하여 전체적인 판을 깔아놓았다. 그 선택에 대한 좀 더 명확한 감정적 각인을 불러일으켰고, 그 선택과 연동된 이후의 사건과 결과를 더욱 크게 부각시킬 수 있었다.

우리가 게임 플레이라는 행위를 통해 도출되는 결과는 직접적이다. 게임속 주인공이나 자신이 다룬 캐릭터, 유닛이 가지는 강함의 척도인 레벨과 그 레벨과 연동된 능력치, 승리/패배 횟수, 획득한 돈 등의 수치적 결과물이다. 또는 자신이 얻은 아이템과 다른 동료 또는 부하 캐릭터 등의 자원이다. 자신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돈을, 노력을 게임에 들였는지, 자신의 실력 – 컨트롤 능력이나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 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우위에 있는지 등에 따라 그 게임은 수월히 진행되거나 타 플레이어 대비 우월한 등수, 결과물을 획득한다.

하지만 그토록 몰입하지만 정작 플레이서 스스로의 행위는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런데, 스스로의 행위는 짚고 들어가면 상당히 무겁다. 게임이니까 라고 의문을 가지거나 생각하는것 자체를 하지 않고 넘어가지만, 이렇게 직접 묘사해보면 아무 생각 없이 행한다는 것이 이상한 면면이다. 주먹으로, 칼로, 총으로, 미사일로 때리고 찌르고 베고 쏴 파괴하고 죽인다. 로봇이나 몬스터를 조종하거나 마법으로 대량 파괴를 행한다.  필자만 해도 게임을 하며 지금까지 죽여 온 몬스터와 사람을 합친다면 만단위는 거뜬할 것이다.

이렇게 무심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에는 바로 생명이 ‘몇 개’라는 상식적으로 보면 말이 안되지만 게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어하기를 위한 장치, 그리고 궁극의 도구 ‘세이브 & 로드’라는 면죄부가 역할을 한다. 이 장치는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의 행동에 대한 족쇄를 풀어버린다. 물론 자발적으로 또는 강제적으로 현실의 룰을 따르며 착하고 정의로운 주인공의 역할을 수행할수도 있지만 반대로 아님 말고 식의 막나가는 플레이를 가능케 하는 시스템이다.

언더테일은 이 ‘세이브 & 로드’ 라는 시스템적인 요소를 플레이어의 행동에 대한 책임과 결과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장치로서 활용했다. 게임 플레이와 전개 밖의, 외적 시스템이자 게임의 스토리가 건드리지 못하는 세이브와 로드를 게임 내부에서 직접적으로 다룬다. 이들이 모여 플레이어가 선택한 행동의 결과가 드러나는 그 상황에 직면했을 때의 충격이야말로 게임만이 해낼 수 있는 효과이고 언더테일만의 차별지점이며 사람들이 이 게임에 열광한 이유일 것이다.  플레이어는 언더테일의 게임의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차츰 몰입하다가 퍼뜩 이것이 내가 하고 있는 게임인 것을 드러나게 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예술에서 다루는 소격효과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게임임을 강렬하게 인식하면서 역으로 그 충격을 통해 더욱 게임에 몰입하게 하는 독특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게임이 가지는 가장 독특한 지점은 게임 안에서 내 행동의 결과로서 다가오는 내용이 유희 이상의 무언가로서 게임매체가 가지는 거리감을 부수고 내가 ‘즐겼다’를 넘은 어떤 것이었다라는 사실을 플레이어의 가슴에 대못처럼 박아넣는 점이다. 게임의 엔딩은 플레이어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지금은 상당히 일반화된 회차 플레이, 즉 한번 게임을 클리어하고 다른 선택을 하며 또 다른 시점과 결말을 보기 위해 다시금 게임을 진행하는 행동을 통해 맞이하는 진실은 계속해서 플레이어를 ‘찌른다’. 인터넷상에 여러 플레이어들의 글을 통해 공개되어있는 언더테일의 엔딩은 모두 소름끼치고 심지어 내가 플레이어로서 행한 행동에 자괴감과 공포까지 느끼게 만든다. 게임이 가진 상호작용성과 그 안에서 자신의 선택과 행위에 의한 결과가 단지 웃고 즐기며 넘거버릴 사안만이 아님을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단적인 예로 게임초반 무조건적인 선의를 보이며 주인공에게 접근하는 토리엘에 대하여 어지간한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드러난 게임의 배경에서 인간과 몬스터와의 전쟁이 있었고, 몬스터가 패배해 지하로 쫓겨간 상황에서 그 지하로 떨어진 것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플라위라는 캐릭터에게 정신이 번쩍 들정도로 참신하게 까인 찰나에 만난 인물이 토리엘이니 만큼 그 감정은 더할 것이다.

 

우리는 그 이전 각종 매체를 통해 과도한 친절과 배신과의 상관관계를 다양하게 경험해왔으니 말이다. 게임 중간중간 드러나는 복선도 이를 부채질한다. 토리엘의 집에서 볼 수 있는 다수의 어린이 신발이나 어라, 그런데 그 의심을 품고 결국 토리엘을 죽인 플레이어가 맞닥뜨린 현실은 토리엘이 정말 주인공을 염려하고 걱정했다는 사실이었다. 초반부니까, 그리고 어느 정도의 후회 속에서 플레이어가 할 수 있고, 게임만이 할 수 있는 ‘로드(Load)’를 통해 기존 세이브 파일을 불러와 게임을 진행하면서 다시금 마주한 토리엘의 한 대사는 플레이어를 말그대로 멘붕에 빠뜨린다.

“왜 그러니, 마치 유령을 본 것처럼…”

아래의 문구는 하나의 이야기를 마치고, 다른 엔딩을 보기 위해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 2회차 이상의 플레이에서 보게 될, 거울앞에 서서 보게 되는 메시지이다. 길지않은 이 문장은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위안을, 누군가에게는 공포와 섬뜩함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바로 플레이어가 키보드로, 패드로 게임안에서 행한 행동에 대한 댓가이다.

게임명 Undertale
개발사 Toby Fox
출시일 2015. 9.15.
장르 RPG, 슈팅, 퍼즐
플랫폼 Win, Mac, PS4, PS Vita

 

허대찬 (더플레이 선임연구원)

 

카테고리: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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